그렇다 , 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종교의 시작이 아니다.
나는 어떠한 형용사도, 어떠한 경계도 모르는,
오직 영혼의 자유만을,
오직 그대 존재의 침묵만을,
오직 그대 잠재력의 성장만을,
그대 밖의 신이 아닌 오직 그대 자신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신성(神性)만을,
그대 안에 존재하는 그 신성의 경험만을 아는
나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성(religiousness)의 시작이다.
그대는 내게 묻는다. 당신이 깨달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나는 웃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애쓰던 그 모든 어리석음을 보고 나는 정말 정신없이 웃었다.
모두가 우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깨달음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미 주어진 것을 얻기 위해 그처럼 애를 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대가 이미 그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얻어질 수 있는 것은 그대가 지니고 있지 않은 것뿐이이다. 그러나 깨달음은
그대의 본성 그 자체이다.
나는 여러 생을 통해서 깨달음을 위해 몸부림쳐왔다. 깨달음만이 그 여러 생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얻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다했다. 그러나 언제나 실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의 본성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얻어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야망의 대상이 될수 없다.
마음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돈을 원하고, 권력을 원하고, 명성을 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외적인 일들에 질리게 되면 마음은 깨달음을, 해탈을, 니르바나를, 신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똑같은 욕망이 돌아온 것뿐이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외부에 그 대상이 있었고 이제는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자세, 접근태도에는
변한 것이 없다. 그대는 과거와 다를 것이 없는 똑같은 사람이다.
'내가 깨달음을 얻은 날'이라는 말은 단순히 성취해야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신성(神性)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모습 그대로 완전하다.
아무런 발전도, 어떠한 발전도 필요치 않다. 신은 어떤 것도 불완전하게 창조하지 않는다.
설사 그대가 불구인 사람을 발견한다 해도, 그대는 그 사람이 완벽한 불구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은 결코 불완전한 것을 창조하지 않는다.
도서명 : 길은 내 안에 있다
지은이 : 오쇼 라즈니쉬
읽게 된 동기 : 20세기 가장 위대한 깨달음의 구도자, 성자라고 칭송되는 오쇼를 우연히 인터넷상에서 알게 되었다.
수많은 기행과 강의, 저서로 남겨진 그의 삶에서 나 또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깨달음이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님을 미력하나마 알지만 아직 내 몸과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 못해 아직도 얻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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