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변화의 사막에 있지 않을 때에도, 나침반 바늘을 찾고 있지 않을 때에도 눈높이
낮추기를 실행할 수 있다. 매일 지금 이 순간에 완벽하게 충실히 산다면 어떨까?
셔츠를 다리건, 출근하는 길이건, 딸아이와 노는 순간이건, 세탁기에서 막 세탁한 옷을
꺼내고 있는 중이건, 그 순간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어떨까?
이런 자세로 산다고 해서 해야 할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아닌,
바로 눈앞에 있는 일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가운데에서도 현재의 충만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렇듯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사막을
여행하는 마음 자세이며 그 덕분에 우리의 여행이 더 풍요로워 진다.
아마 그래서 투아레그족 언어인 타마셰크어에는 내일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하라 사막에서 꼭 오아시스에 멈추어 쉬어야 할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할 것은
정정한다. 마지막으로 오아시스에서는 같은 여행길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눈앞에 닥친 일뿐 아니라 위의 중요한 세 가지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잘 알면서도 왜 멈추어 쉬어가지 않는 것일까?
문제는 우리가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산다는 데 있다.
우리는 정상에 다다르기 위해 안달하는 열병을 앓고 있다. 우리는 항상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젖먹던 힘까지 다해 정상을 향해 가며, 정상에 오르면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낼 때까지, 또는 쏟아져 들어온 193통의
이메일에 다 답을 할 때까지 오아시스를 그냥 지나친다면 그것은 바로 정상을 향한
열병에 걸려 있음을 의미한다. 직장 조잭 개편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이 학교를
마칠 때까지, 이혼이 마무리될 때까지, 퇴직할 때까지 오아시스에서 쉬는 것을
미룬다면 목적지를 인생의 우선 순위로 삼았다는 뜻이다. 퇴직을 정상에 오르기까지
간과하고 지나쳤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메우는 거대한 오아시스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막 여행의 핵심적인 규칙을 잊은 것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정신 상태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사람들은 극도로 피곤한 상황에서 정상을 향해 계속
나아가다가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절단하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다행히도 사하라를 건너는 여행자 중에 정상에 대한 열병을
앓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사막에는 정상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 전날과
똑같은 사막의 지평선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은 그 다음
오아이스밖에 보지 못한다. 인생을 산이 아니라 사막으로 보게되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뿐 아니라 중요한 관계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쉬지 않고 정상으로 치닫게 만드는 열병 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일을 해치운다.
하지만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지 않으면 인생의 사막, 변화의 사막은 우리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1.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
2.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3.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4.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
5.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지기
6.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도서명: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지은이 :스티브 도나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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