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자유롭다.
업장은 에고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 부질없는 것들입니다. 마음이 삶을 지배하는 한 고통은 계속해서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고통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있는 그대로'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저항은 생각의 차원에서 보면 판단의 형태로 나타나며, 감정의 차원에서는 부정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고통의 강도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저항의 정도에 달려 있으며, 자신을 마음과 얼마나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을 부정하고 여기서 벗어나려 합니다.
요컨대 마음과 자신을 동일시할수록 더 많은 고통을 받게 됩니다. 반면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수록 고통과 괴로움, 에고의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모든 고통은 궁극적으로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진리지요.
그러나 문제는 이 말이 여러분 자신에게도 진리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냥 믿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평생 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그 고통이 환상이라고 우길 건가요?
말로만 환상이라고 되뇐다고 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제가 여기서 말하려는
내용은 진리를 깨닫고 몸소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하는 한, 무지의 어둠에 머물러 있는 한 고통은 피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주로 감정적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감정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이나
죽음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하죠. 원한이나 증오, 자기 연민, 죄의식, 분노, 우울, 질투,
약간의 조바심도 일종의 고통입니다. 쾌락이나 감정의 도취도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본색을 드러내는 고통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지요.
황홀한 '극치감'을 위해 마약을 복용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순간적인 고양 상태에서
금새 나락으로 떨어지며, 쾌락은 고통으로 바뀌지요. 쾌락을 추구하며 빨리 쉽게 뜨거워진
관계는 오래지 않아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 역시 대부분이 겪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보면, 좋고 나쁨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마음과 동화된 에고의 의식 상태에 머무는 한 근원적인 고통을 잉태하고 있으니까요.
고통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지금 만들어내는 고통, 몸과 마음속에 아직 살아남아 있는
과거에서 비롯되는 고통 이 그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힘에 연결되지 않는 한, 여러분이 경험하는 모든 감정적인 고통은 앙금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앙금은 계속 여러분의 내면에 남아, 이미 자리하고 있는 과거의 고통과
함께 몸과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세상에 대한 무지로 인한 어린 시절의
고통도 있습니다.
이렇게 축적된 고통은 부정적인 에너지 장을 만들어 몸과 마음을 지배합니다. 만약 이 부정적
인 에너지 장을 자기 나름의 권리를 지닌, 보이지 않는 실체로 바라볼 줄 안다면, 어느 정도
진실에 접근한 것입니다. 감정적인 업장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
감정적인 업장은 활동 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잠복 상태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의
90퍼센트 정도는 대개 잠복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경우엔
100퍼센트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삶의 대부분을 업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이도 있는가 하면,
절친한 사람의 배반이나 상실, 버림받음과 같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만 업장을 경험하는 이도
있습니다.
업장은 무엇에든지 자극받아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건드릴 때는 더욱 그렇
지요. 잠복 상태에서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 가까운 사람이 무심코
던지 말에도 업장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업장에서 벗어나기
업장은 여러분이 '있는 그대로'업장을 관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업장을 관찰하고
내면의 에너지 장을 느끼는 순간, 여러분은 업장과 동일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현존'이라고 부릅니다. 현존의 상태
에서는 업장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업장은 더 이상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가장하거나, 힘을 충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에 여러분은 비로소 내면의 강인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떼를 쓰는 아이처럼 짜증스럽지만 별로 해를 끼치지 않는 업장도 있습니다. 사악하고 파괴적
인 괴물이나 악마처럼 덤벼드는 업장도 있고요. 육체적으로 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지만, 감정
적으로 상처를 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주위 사람이나 가까운 이를 공격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분 자신을 공격하는 업장도 있지요. 이런 업장과 마주칠 때, 여러분은 매우 부정적
이고 파괴적인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됩니다. 질병과 사고는 대개 이런 상태에서 일어나지요.
심지어는 업장에 짓눌려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갑자기 험악하고 이질적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
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여러분 내면 속의 업장을 지켜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안에 업장을 불러오는 어떤 징후가 도사리고 있는지 잘 살펴보세요. 불안이나 초조,
우울, 폭력성, 분노, 원망, 좌절, 인간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려는 욕구 등 어떤 형태로든 업장은
잠복해 있습니다. 그것이 깨어나는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합니다.
업장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무의식적으로 업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동안에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런 동일시의 순간, 업장은 깨어나 여러분을 지배하고, 여러분 자신이 되고, 결국은 여러분을 통해 살아남게 됩니다.
요컨대 업장은 여러분을 통해 그 먹이를 구하지요.
업장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에너지와 공명하며, 분노와 파괴, 증오, 슬픔, 감정적인 사건, 폭력, 질병 등의 형태로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들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는 순간, 자신의 에너지 주파수를 반영하는 상황을 여러분의삶 속에 만들어내죠.
고통은 고통만을 먹고 살아가지, 기쁨을 먹고 살지는 못합니다. 고통은 기쁨을 소화할 수 없
기 떄문입니다. 일단 업장이 여러분을 점령하면, 여러분은 더 많은 고통을 원하게 됩니다.
업장의 희생자나 하수인이 되어, 고통을 가하거나 스스로 고통받고 싶어하게 되지요.
두 가지 모두를 원하기도 합니다. 사실 고통을 주는 것과 고통을 당하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
습니다. 물론 이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은 고통을 원치 않는다고 극구 부인할 것입니
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을 향한 것이든 타인을 향한 것이든 계속해서 고통을
유지하려는 경항이 있음을 알게될 것입니다. 이를 분명히깨달으면, 고통을 용해시켜버릴 수 있습니다. 더많은 고통을 원하는 건 미친 짓이며,의식적으로 미쳐있는 사람은 아무도없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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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시에서 벗어나 지켜보는 자가 되어도, 업장은 계속 작용하면서 여러분을 다시 자신에게
동화시키려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구르던 바퀴는 밀지 않아도 얼마간 그 관성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더 이상 동일시에 힘을 실어주지 않아도 업장은 어느 정도의 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오래 가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 머물면서 깨어 있으세요. 내면을 빈틈없이 지켜보며, 똑바로 업장을 직시하도록
활짝 깨어 있는 상태에서 업장의 에너지를 느껴보세요. 그러면 업장은 더이상 여러분의 생각
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깨어 있음으로 거듭나기
업장이 생각에 끼어드는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때 고통은
연료가 되어 우리의 의식을 더욱 밝게 타오르도록 하지요.
지은이 : 에크하르트 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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